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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대부분 전통문화 장인의 출발점은 가업이다. 몇 대를 걸쳐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일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전통의 맥을 이어간다. 후수 명인 안명자 선생은 좀 다르다. 공무원으로 평범한 나날을 지내던 어느 날, 변화 없는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던 즈음 올케의 소개로 매듭을 접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후수(後綬)는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조복(朝服) 및 제복(祭服)을 입을 때 허리 뒤 엉덩이 쪽에 두르는 장식으로 관위(官位)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식 중 하나이다. 품계에 따라 무늬, 색실의 수, 고리(환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그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것들이 있다.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곤지암에 자리 잡고 있는 수곡공방 2층 전시장에는 그런 멋진 공예품들이 가득하다.자개가 내뿜는 영롱한 빛깔과 살아 숨쉬는 듯 생동감 넘치는 문양, 머리카락 한 가닥의 흠조차 찾을 수 없는 반질반질한 검은 옻칠.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매료될 설명이 필요 없는 아름다움. 나전칠기이다.그렇지만, 나전칠기는 보고 즐기기만 하는 예술품이 아니다. 직접 만지고 사용하면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 또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집이 사람이라면 창호는 얼굴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얼굴이고 가장 변화무쌍한 것 또한 얼굴이죠.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집의 얼굴을 만듭니다."서울시 무형문화재 심용식 소목장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아름다운 집의 얼굴'을 만드는 장인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과 수덕사, 동학사, 불국사, 송광사, 운문사 등 전국 유수 사찰 법당의 창호는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쳤다.영국 대영박물관의 한옥 ‘사랑방’의 창호, 이응노 화백의 프랑스 고암미술관 창호도 그의 작품이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전통한지공예가협회 회장 심화숙 명인에게 한지는 운명이었다.소박한 종이 위에 그려진 민화를 본 순간 그는 전통 한지의 깊은 매력에 반해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한지공예에 푹 빠지고 말았다. 뜨거운 열정으로 스스로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간 그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사에 획을 긋는 큰일들을 잇달아 해냈다."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한지공예를 배우면서 적성에 정말 잘 맞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단 한 번도 지겹다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한지를 만지는 게 행복했고 하면 할 수록 더 큰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한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원서동 한옥 골목 끝자락에 대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는 알록달록한 북촌단청공방이 눈에 들어온다. 전통 단청 장인이자 불교미술 전문가인 김도래 장인이 북촌불교미술보존연구소도 겸하는 이 곳에서 2대째 전통 단청과 불교미술을 전승하고 있다.김도래 장인은 불교미술계의 명장 북촌 김익홍 선생과 개금장 백태남 여사 부부의 딸이다. 공방과 연구소의 북촌이라는 이름은 김익홍 선생의 호인 北村에서 따온 것이다. 김익홍 선생과 백태남 여사는 단청, 불화, 조각 등 불교미술의 모든 분야
(전주=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역사와 전통의 도시 전주는 톨게이트부터 남다르다. 일주문을 닮은 외관도 멋지지만 '전주'라고 쓰여진 커다란 나무 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예가 여태명 원광대 교수가 쓴 글씨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8호 김종연 민속목조각장이 조각한 작품이다.전주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목우헌'은 김 목조각장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한 나무 향이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나무 토막에 새 생명을 입히는 김 목조각장을 만날 수 있다.나무와 우연히 만나는 집이라는 뜻의 옥호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옥석을 가리는 일입니다.”옥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는 질문에 엄 옥장은 거침없이 이렇게 답한다.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이들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혼자 7남매를 키우며 생계를 꾸리느라 어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 공납금도 제대로 내지 못한 때가 많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머니를 도와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하고 중학교 2학년 가을 자퇴를 결행했다. 1968년 춘천 광산에서 옥이 발굴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단절되었던 우리나라 옥공예가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어머니는 제게 큰 기둥 같은 분이셨습니다.” 하늘물빛 전통 천연 염색 연구소 홍루까 대표는 이야기에 앞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밝게 웃는다.“우리나라 쪽염을 말하면서 어머니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매듭을 하셨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던 쪽씨를 일본에서 들여와 쪽염을 부활시킨 분이십니다.”50년 이상 전통매듭 장인으로 활동해 오신 어머니는 화학염색 실로 매듭을 지어 오시다가 1970년대 중반쯤 화학 실 대신 옛날 우리 조상들처럼 천연 염색 실로 매듭을 지어봐야겠다는
(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김기호 금박장(金箔匠)은 조선 철종 때 왕실 내수사 시정이었던 고조부 김완형, 순종 때 왕실 부금장이었던 증조부 김원순(에 기록되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금박장 조부 김경용,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부친 김덕환의 대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로 인정되어 조선 철종 때부터 5대에 걸친 왕실 장인 가문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전자 생산기술센터 설계팀에서 공장 라인에 필요한 로봇 설계를 했는데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업을 잇는 일
(서울=우리뉴스) 최승철 대기자 =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이웃 어르신(류천만 옹은 훗날 시아버지가 되셨다) 공방에서 처음 매듭을 접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 저거 정말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귀주머니에 다는 국화매듭을 알려주셨는데 제가 한 걸 보시고는 매듭을 한번 배워보는 것이 어떠냐 제안하셨고 저는 배우겠다고 했습니다.”가르쳐 주시는 대로 모양새를 만들면서 손톱이 빠지는 일도 있었는데 손으로 엮어서 모양이 만들어지면 그 기쁨도 컸지만 공방 제자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그
(인천=우리뉴스) 최승철 대기자 = 자수 연구가셨던 어머니 녹향당의 뒤를 이어 자수의 길을 걷고 있는 녹향 이미혜 명인. 어린 시절, 자수연구실을 운영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어머니 곁에서 자연스럽게 전통자수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의사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자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권했던 건 첫째, 어머니가 하던 작업을 큰딸이 뒤이어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 그 다음으로는 노년의 정신 건강에 좋고 혼자서도 오래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이유에서였다.아버지 말씀대로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나니
(서울=우리뉴스) 방현옥 기자 = 전신마비로 자신이 겪었던 좌절을 똑같이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으로 용기를 얻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그림을 그리는 임경식 구필화가(mouth painting artist)를 만나 그림이 인생이 된 이야기를 들었다.고3 때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다.실업고등학교를 다니며 고3 때 취업을 해 직장을 다니던 중 군대에 가는 선배의 송별 모임 후 오토바이 사고가 나고 전신마비가 왔다. 어린 나이라 전신마비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를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울=우리뉴스) 최승철 대기자 = “코로나19 사태로 문화 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코로나로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문영표 이수자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무형문화재 정장완 침선장(1913~2009)과의 인연은 큰언니 문옥표 교수 덕이었다. 침선장의 동생 정양완 교수가 당시 한국학 중앙연구소에 재직 중이던 문 교수의 선배였던 것.침선장의 수업은 처음 돈암동에서 시작되었다. 그후 혜화동을 거쳐 천안까지 이어졌지만 거리에 상관없이 침선장을 만나러 갈 때는 언제나 행복했다.집에서
(서울=우리뉴스) 안병현 기자 = 교회의 대형화.세속화는 어찌보면 당연한 한국 교회의 단면이다. 그러나 좀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그가 가진 것은 십자가 올라간 큰 건물도 아닌 조그마한 사무실 공간이 전부다. 인터넷 공간에서 신도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유형욱 목사. '죽알성교회' 담임목사다. 유형욱 목사는 이 교회에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믿는 '슬기로운 신앙 생활'의 방법 전파에 나서고 있다.우리 교회의 성경 해석이 지나치게 인본주의적이고 왜곡되어 있으며 신도들 또한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는
(서울=우리뉴스) 이가은·강원정 기자 = 최고 시청률 11.2%를 기록하면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를 그린 SBS 드라마 '악귀'가 종영했다. 극 중 키 플레이어 역할을 담당하며 '김우진'역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김신비 배우를 만났다. 군대 시절 연기부터 무대 기획까지 연극 무대를 처음 접하며 연기의 매력에 빠진 김신비는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영화,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 나가고 있는 신예다. 김신비는 드라마 '악귀'에서 타인에게 곁을 주지 않고 외롭게 살아온 '해상'의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악귀에
(서울=우리뉴스) 강원정 기자 = 무서운 '친절한 금자씨' 대신 위트있는 '친절한 영숙씨'가 온다.뛰어난 무대 장악력과 탄탄한 기본기로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는 뮤지컬계의 '디바' 신영숙을 서울 종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1999년 뮤지컬 '명성황후'로 데뷔해 '모차르트', '맘마미아!', '레베카' 등 명작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배우 신영숙은 인터뷰 내내 유쾌한 웃음으로 주위를 즐겁게 만들며 무대 속 카리스마 있는 '마나님'의 모습과는 또다른 매력을 드러냈다.신영숙은 바쁜 스케줄에도 오는 8월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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