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대부분 전통문화 장인의 출발점은 가업이다. 몇 대를 걸쳐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일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전통의 맥을 이어간다. 후수 명인 안명자 선생은 좀 다르다. 공무원으로 평범한 나날을 지내던 어느 날, 변화 없는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던 즈음 올케의 소개로 매듭을 접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후수(後綬)는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조복(朝服) 및 제복(祭服)을 입을 때 허리 뒤 엉덩이 쪽에 두르는 장식으로 관위(官位)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식 중 하나이다. 품계에 따라 무늬, 색실의 수, 고리(환環)가 다르다.
가업으로 이어 전수한 사람들보다는 늦게 시작했지만, 안 명인은 일이 재미있었다. 계속할수록 뭔가 사명감 같은 게 생겼단다.
올케가 소개한 이상숙 선생 공방에서 처음 배운 것은 매듭이었다. 선생이 가르쳐 주는 대로 염색한 명주실로 한땀 한땀 열심히 짜기 시작했다. 실이 한 가닥 두 가닥 엮이고 그것이 멋진 문양을 만들어 낼 때마다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한번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짜고 또 짰다.
그 후에는 장순애 선생을 소개받아 왕의 예복에 착장하는 후수를 본격적으로 짜기 시작했다.
장 선생으로부터 많은 기능을 배웠고 유물재현에 마음을 다했다.
배울 당시만 해도 후수, 망수가 흔하지 않았었지만,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낮, 밤 없이 작업하며 점점 후수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게 바로 평생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선생 문하에서 10여 년의 세월을 보낸 후 독립하게 됐다. IMF 시절이었다. 선생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은 생각과 독자적으로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유였다.
1989년에 처음으로 후수와 망수(조복 등 쪽에 있는 띠에 늘어뜨리던, 실로 엮은 넓은 줄)를 선보였는데 전통 복식 전문가들조차 처음 접하신 분들이 있었다고 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전통 공예가라면 꼭 도전해 보고 싶은 공모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해서 여러 차례 수상도 했다.
실기에 자신감이 붙은 그는 이론을 겸비하고자 우리나라 복식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신 유희경 박사가 운영하던 유희경복식문화연구원에서 전통복식 강의를 들으며 전통 복식에 대한 이론도 체계적으로 공부해 나갔다.
또한 경주대학교 대학원 문화재과에서 본격적으로 후수에 관한 공부도 시작했다. 그런데 후수에 관한 논문이나 저서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관련 이론을 정리한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경주까지 첫차를 타고 내려가고 막차를 타고 올라오는 고된 날들이 계속됐다. 그래도 후수만 생각하면 힘든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논문이 ‘한국 중세 면복 후수의 기원과 정착 과정’이다.
그 후 2016년 두 번째로 후수의 제작 방법에 관한 논문 ‘면복 후수의 재현과 상징’을 쓰게 됐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물이나 문헌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후수 기법을 글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논문 쓰는 동안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교수들의 응원과 격려, 정성껏 구해서 보내준 자료들에 힘을 얻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 유희경 박사의 도움이 정말 컸다.
유 박사는 “우리나라에 후수 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전문적인 후수 연구까지 해줘서 고맙다”라고 여러 차례 치하해 주었다. 평소 존경했던 분의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보람되고 기뻤다고 한다.
“유희경 박사님 추천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때 제가 처음으로 만든 왕 후수를 기증했습니다.”
모든 전통 분야 공예나 예술품 제작 기간이 짧지 않지만, 후수 제작 기간도 만만치 않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보통 7~8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제작 시간도 길게 걸리는 데다 예복을 입고 뒤에 두르는 장식인 까닭에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유로 고증이 철저하다는 정통 사극에서조차도 슬쩍 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현실이 못내 아쉽다.
후수 제작이 힘든 만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제자 양성도 쉽지 않다.
마침 10여 년간 매듭을 해오던 이가 뒤를 이어보겠다고 선생의 공방에 들어와 열심히 작품을 하더니 처음으로 도전한 전승공예대전에서 특선을 받아왔다.
뿌듯하기도 했지만, 후수 하는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나 맥이 끊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쉽지 않고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안명자 명인은 후수의 가치를 알기에 꾸준히 묵묵히 그 길을 걷는다. 고된 작업을 하려면 강한 체력이 필요한 만큼 이른 새벽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안 명인은 매년 오월이면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유네스코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되고 세계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통합된 종묘제례에는 빠짐없이 참석한다. 후수까지 착용하고 정식으로 차려입은 우리의 전통 복식을 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앞으로 후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종묘제례 의식에서 뿐일지도 모른다.
전통 장인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은 매우 미흡하고 장인들의 입지가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사라져가는 전통 장인들을 보호하고 전통의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란다.
안명자 명인은
·안명자 후수공방 대표
·1999~2008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상
·2006~2008 서울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지원 기능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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